나이 들며 흔들리는 정체성, 글쓰기로 단단한 중심 잡기

 




이름표가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낯선 공허함


 어느 순간 거울 속 제 모습이 참 낯설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수년동안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저는 꾀부리지 않는 '성실함'과 끈질긴 '집중력'으로 무장한 든든한 실무자였고, 그것이 곧 저를 설명하는 가장 선명한 이름표였습니다.

하지만 익숙했던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나이라는 숫자가 앞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그 견고했던 소속과 이름표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쫓기듯 바쁘게 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명함과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온전한 '나'를 마주했을 때 홀가분함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헛헛함과 정체성의 혼란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밤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했죠.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역할의 변화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변할 때 더욱 크게 체감됩니다. 

최근 딸도 콘텐츠 마케팅 직무로 취업을 준비하며 밤낮없이 포트폴리오를 기획하고 최신 트렌드를 좇아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 열정적으로 독립을 준비하는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엄마라는 촘촘한 울타리 없이도 스스로의 세계를 잘 구축해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상실감이 스치기도 합니다.


평생을 가족의 울타리로, 조직의 꼼꼼한 살림꾼으로 타인의 필요를 채우는 데 에너지를 쏟아왔습니다. 그런데 나를 향해 있던 누군가의 의존과 역할이 점차 줄어드는 빈 둥지 시기가 오면,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사람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까?"라는 깊고 무거운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타이틀 대신 '변하지 않는 고유성' 기록하기


이처럼 중장년의 나이에 불쑥 찾아오는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기 쓰기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저는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기 위해, 일기장에 과거의 '직함'이나 누군가의 '엄마'라는 역할 대신 저만의 '변하지 않는 고유성'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00기업 부장이다" 혹은 "나는 00의 엄마다"라는 외부의 타이틀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유한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복잡하게 엉킨 숫자가 딱 맞아떨어질 때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묵묵히 내게 주어진 일에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할 때 가장 나다워진다", "나는 거실에 깔아둔 두툼하고 푹신한 명카펫 위를 맨발로 걸을 때 전해지는 그 묵직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나만의 취향과 기질은 어떤 수식어 없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고유한 정체성입니다.


일기장에 매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해냈던 아주 작은 행동의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가 보세요. 낡은 직함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단단한 '진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흔들리는 자아를 꽉 붙잡아주는 '정체성 탐구 질문 3가지'


막연하게 나를 찾겠다고 백지를 마주하면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글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추천합니다. 

제가 직접 효과를 보았던 3가지 정체성 탐구 질문을 소개합니다.


  1.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전히 몰입(집중)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타인의 인정이나 경제적 보상과 무관하게 스스로 성취감을 느꼈던 일 찾기

  1. 최근 내 돈이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고 싶은 관심사나 물건은 무엇인가?

        나의 숨겨진 가치관과 변하지 않는 개인적 취향 파악하기

  1.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가장 칭찬해 줄 만한 '변함없는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긍정하고 내면의 단단한 강점 확인하기

이 세 가지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파편화된 생각들을 펜으로 꾹꾹 눌러 노트에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나이 듦과 환경 변화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결코 휩쓸리지 않는 나만의 닻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삶의 무게 중심을 타인과 직장에서 온전한 '나 자신'으로 옮겨오는 치유의 글쓰기, 

오늘 밤 바로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 핵심 요약


  1. 나이가 들며 직함과 가족 내 역할이 사라질 때 찾아오는 헛헛함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정체성 위기다.

  2. 외부의 유한한 타이틀 대신 나의 취향, 강점, 변하지 않는 기질을 글로 기록하면 자아를 회복할 수 있다.

  3. 정체성 탐구 질문을 통해 삶의 무게 중심을 타인에서 나 자신으로 옮겨오는 것이 중장년 글쓰기의 핵심이다.

  • 여러분은 과거의 화려했던 직함이나 누군가의 부모라는 역할을 모두 떼어놓고 보았을 때, 스스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변하지 않는 성향이나 취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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